2 비트코인 역사

가입인사

홈 > 커뮤니티 > 가입인사
가입인사

2 비트코인 역사

한영유 0 1

비트코인 역사첫 채굴 (2009년 1월 3일)비트코인의 개발자 사토시 나카모토는 2008년 10월 31일 백서를 작성하여 공개하고 2009년 1월 3일 최초의 비트코인 블록인 제네시스 블록을 생성했다.그리고 1주일이 지난 1월 10일에는 C++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만든 비트코인의 소스코드를 누구나 열람하고 수정할 수 있도록 이메일로 무료 배포했다.그달에 사토시는 본인의 컴퓨터를 이용하여 처음으로 50비트코인을 채굴했으며 할 피니에게 10비트코인을 전송했고, 할 피니는 본인의 컴퓨터에서 비트코인을 채굴했다. 할 피니가 처음 채굴을 할 대 당시의 블록 생성 번호는 70번대였다. 할 피니는 사토시를 제외한 최초의 채굴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비트코인은 가치를 논하는 것조차 아직 불가능한 상태였다.​피자데이 (2010년 5월 22일)비트코인 초기 개발자 중 한 명인 미국 플로리다의 라스즐로 핸예츠(Laszlo Hanyecz)는 2010년 5월 18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피자 두 판을 배달시켜주면 10,000비트코인을 지불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비트코인사이트 그리고 4일 뒤인 5월 22일, 그 글을 본 어떤 이가 실제로 그에게 피자를 주문해서 전달해 주었고, 라스즐로는 약속대로 그 사람에게 1만 개의 비트코인을 전송해 주었다.비트코인 1만 개로 피자 두 판을 사 먹은 일화는 아직도 매년 기념될 만큼 여러 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비트코인이 돈을 대신한 대표적인 사례이자 비트코인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환산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일화이기 때문이다.키프로스 사태 (2013년)2012년만 해도 15달러 정도였던 비트코인이 세상에서 크게 주목받으며 가치가 천정부지로 오르게 된 계기는 '키르로스의 구제금융 위기'이다. 러시아와 유럽게 자금의 세금 도피처 역할을 하던 키프로스가 금융위기로 인해 은행 예금에 최고 40%의 과세를 단행한 일을 계기로 비트코인이 대체 화폐로 주목받게 되었다. 그렇게 키프로스의 금융위기는 비트코인의 폭등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키프로스의 금융위기가 세상에 비트코인의 가치를 제대로 증명한 가장 큰 계기가 된 것이다. 그해 비트코인의 시세는 1240달러까지 비트코인사이트 치솟았다.마운트곡스(Mt.Gox) 파산 (2014년 2월)마운트곡스는 리플(XRP)의 공동 개발자이자 스텔라루멘(XLM)을 만든 제드 맥캘럽(Jed McCaleb)이 개설한 비트코인 거래소이다.마운트곡스는 한때 세계 비트코인 거래량의 75%를 차지할 만큼 거대한 거래소가 되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마운트곡스는 2011년부터 이미 썩어가고 있었다.2011년 마운트곡스는 자산들을 담아 놓았던 거래소 지갑의 비밀번호, 즉 프라이빗키를 도난당했고 2011년 상반기부터 85만 개에 달하는 비트코인이 해킹을 당했다. 이 상황은 2014년이 되어서야 수면 위로 드러났고, 2014년 2월 마운트곡스는 파산을 신청했다. 이전까지는 계속해서 상승해 왔던 비트코인의 가치가 마운트곡스의 파산 사태로 인해 몇 년간 긴 하락세을 맞게 되었다. ICO 광풍 (2014년 ~ )마운트곡스 파산 사태로 인한 폭락 이후 조금씩 반등해 오던 비트코인의 가치는 비트코인이 아닌 다른 코인의 부흥으로 인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러시아 태생의 캐나다 소년 비탈릭 부테린(Vitalik 비트코인사이트 Buterin)은 비트코인에 영감을 받아 2013년 이더리움이라는 암호화폐 백서를 작성했고, 2014년 7월 이더리움 재단을 만들어 투자자들을 모집했다. 투자금은 돈이 아닌 비트코인으로 받았고 투자한 사람들에게는 투자한 비트코인의 양만큼 이더리움을 나누어 주었다. 이런 투자 방식을 바로 ICO(Initial Coin Offering)이라 한다.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비탈릭 부테린은 ICO를 통해 31000개의 비트코인을 개발 자금으로 모았다. 2014년 7월 당시 비트코인의 가격은 대략 60만 원대였는데, 비트코인 31000개는 약 180억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이런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2015년 7월 이더리움이 가동을 시작했다.이렇게 성공적인 시작을 했던 이더리움이 비트코인과 가장 다른 부분 중 하나는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누구든지 다른 암호화폐를 발행하고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장점 덕분에 수많은 암호화폐 프로젝트가 더 쉽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고, 이더리움의 성공 덕분에 ICO라는 새로운 자금 모집 방식을 모두가 따라 비트코인사이트 하기 시작했다. 이더리움의 장점① 빠른 코인 전송 속도 (10~15초)➁ 플랫폼 기능(이더리움을 기반으로 다른 토큰 발행 및 개발 가능)➂ 공개도니 개발자의 지속적인 업데이트보통 다른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암호화폐는 토큰이라 하고 자기 고유의 블록체인을 가진 암호화폐를 코인이라고 하는데, 블록체인 개발자들은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쉽게 토큰을 만들어내고 투자자들은 신규 토큰에 투자해서 초창기 가격으로 암호화폐를 지급 받았다. 이후 그 토큰이 시중의 거래소에 풀리면 투자한 초기 가격에 비해 가격이 몇배씩 뛰어 올랐기 때문에 이런 방식은 시간이 갈수록 뜨겁게 달아 올랐다. 이런 과정 속에서 코인시장은 급속도로 규모를 키워 나갔고, 그 광풍은 한구에도 아주 뜨겁게 불어왔다. ICO의 주요 투자수단으로 쓰였던 비트코인의 시세 역시 곗속해서 상승했고, 2018년 1월 초 비트코인의 가격은 2800만 원을 넘어서게 되었다. 주요 인물들의 배신 (2017년~)비트코인이 너무 가파른 상승세와 유명세를 탄 덕분에 수많은 모방품이 생겨났다. 그 모방품들은 저마다 내가 비트코인사이트 진짜 비트코인이다!라고 외치며 세상에 나왔고, 그 중에는 비트코인이 세상 전부인 것처럼 지내 오던 주요 인물들의 배신으로 생겨난 것들도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비트코인캐시(BCH)의 출현이다.중국의 채굴기업 비트메인의 대표 우지한은 비트코인 채굴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그의 독점적인 위치 때문인지 비트코인 개발자들과 자주 마찰을 빚어 왔다. 이런 갈등과 더불어 갈수록 높아지는 비트코인의 채굴 난이도 상승등으로 인해 새로운 사업 수단이 필요했던 우지한은 결국 비트코인을 배신하고 비트코인에 대적할 새로운 코인으로 비트코인캐시(BCH)를 2017년8월1일 만들었다. 이후 비트코인캐시의 가격이 오르면 비트코인의 가격이 내려가고 비트코인의 가격이 오르면 비트코인캐시의 가격이 내려가는 현상이 나타나곤 했다. 비트코인캐시의 흥행에는 우지한 뿐만 아니라 '비트코인 예수'라 불릴 정도로 비트코인을 알리는 데 여념이 없었던 미국 출신의 유명한 비트코인 투자자 로저 버(Roger Keith Ver)의 배신도 한 몫했다.세계 정부들의 철퇴

0 Comments

최근글


새댓글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